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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1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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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버지가 보고 싶다.

- 가평의 흙과 사람을 사랑했던, 故 양재우 장로, 초대 축협조합장을 추모하며...

기사입력 2026-08-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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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석(. 국무총리실 부이사관)

 

해가 바뀌어 또다시 829일이 되면,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1999, 피땀 흘려 일구던 이 땅을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27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살아계셨다면 올해 구순을 넘겨 아흔넷이 되셨을 아버지, 양재우 장로님의 존함이 오늘따라 아련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아버지는 가평군 조종면 신하리의 작은 들녘에서 논과 밭을 일구시던 정직한 농부였습니다. 흙을 속이지 않고 땀 흘리며, 때로는 누에를 기르는 잠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자식들을 키워내셨습니다.

30대 초반 지독한 피부병으로 고통받으시던 중, 현리장로교회 부흥회를 계기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셨습니다. 오직 신앙생활에 전념하고자 교회가 가까운 현리 시내로 터전을 옮기셨고, 깊고 진실한 믿음으로 1976, 43세의 나이에 현리교회 초대 장로로 임직을 받으셨습니다.

현리로 이사한 후 아버지는 잡화점과 신발가게를 운영하며 삶의 기반을 다지셨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에 도전하셨습니다. 당시 현리에는 생소했던 젖소 목장(조종목장)을 시작하여 서울우유 조합원이 되신 것입니다.

새벽마다 손수 젖을 짜서 택시에 싣고, 집유차가 오던 포천 서파 검문소까지 달리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아직도 저의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만 안주하지 않고 이웃과 지역을 먼저 생각하던 분이셨습니다. 당시 가평의 축산인들은 군부대 납품을 위해 양평축협을 거쳐야만 하는 큰 불편을 겪고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문턱조차 넘지 못하셨지만, 아버지는 특유의 뚝심과 진정성으로 가평 축산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앞장서셨습니다.

그 결실로 '가평군축산업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하셨고, 마침내 초대 축협 조합장을 맡아 지역 축산업의 기틀을 다져놓으셨습니다. 배움의 길은 짧았을지언정, 이웃을 이롭게 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선각자로서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동생(양재수 전 가평군수)을 가평을 위해 일할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의 논밭과 살던 집까지 농협은행에서 담보로 잡혀가며 대출을 받아 선거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로 인해 집안에 닥친 경제적 시련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버텨내셨던 그 희생과 결단은, 형제간의 우애를 넘어 지역을 향한 진정한 헌신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하며 이웃의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지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에게 삶의 가장 큰 이정표입니다.

"아버지가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27주기 기제일을 맞이하여, 가평의 흙을 사랑하고 사람을 보듬었던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과 고결한 뜻을 가슴 깊이 되새깁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관리자 (gp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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