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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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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을학기 『대학』과 『중용』을 시작하며

- 물질의 풍요를 넘어 정이 넘치는 인간다움의 길 -

기사입력 2026-08-1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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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룡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손안의 기기와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편리함을 누린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와 문명의 편리함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외로움과 갈등, 단절과 무관심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보다 풍요로워진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졌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은 물질의 결핍보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내 성공, 내 재산, 내 자녀, 내 감정과 이익만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다 보면 이웃의 고통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일이 되기 쉽다. 소통의 수단과 매체는 넘쳐나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공감의 능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결국 문제의 중심에는 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한 나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해체는 비단 현대사회만의 현상이 아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역시 개인과 제후국들이 이익과 권력을 좇으면서 인간다운 질서와 공동체가 무너지던 혼란의 시대였다. 공자는 이러한 혼란의 근본 원인을 단순히 정치나 제도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서 찾았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라고 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극기(克己)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모두 없애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 욕망과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만을 위한 나를 넘어서는 일이다. 자기중심적인 욕망에 끌려가는 나를 이겨낼 때 비로소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다운 관계가 회복된다. 이것이 바로 예로 돌아가는 복례(復禮)이며, 그 완성된 삶의 모습이 바로 인()이다. 따라서 극기는 자기부정이 아닌 자기중심성의 극복이며, 궁극적으로는 에서 , 다시 우리로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을 절제하고 타인에게로 나아가야 하는가? 중용은 그 근본적인 이유를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하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는 구절로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본래 타인을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도덕적 본성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눈앞의 이기심과 욕망에 흔들리기 쉽기에, 그 인간다운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배움과 수양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전을 공부하는 목적은 옛사람의 지식을 외우거나 교양을 쌓는 데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는 인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함이다. 무관심(Apathy)에서 벗어나 타인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연민(Sympathy)으로 나아가고, 연민을 넘어 상대의 처지를 내 일처럼 이해하는 공감(Empathy)에 도달하며, 마침내 그 공감을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Action)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고전 공부가 지향하는 진정한 삶의 변화다.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삶의 출발점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는 데 있다. 대학의 성의정심(誠意正心)은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진실하게 살피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공부이며, 중용의 신독(愼獨)은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만의 순간에도 자신을 삼가고 바르게 행동하는 태도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이나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도덕은 진정한 인격이라 보기 어렵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향해 진심 어린 배려를 건넬 수 있다.

이처럼 철저한 자기수양 위에서 비로소 중용의 삶이 가능해진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불편불의(不偏不倚)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무과불급(無過不及)은 단순한 우유부단함이나 적당한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바로 세운 사람이 상황과 사람을 올바르게 살피면서 가장 적절하고 도리에 맞는 길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조화의 지혜다. 때로는 자신을 절제하고, 때로는 타인을 배려하며, 때로는 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의 모습이다.

결국 물질이 풍요로울수록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욕망의 크기를 조금 줄이고 타인의 처지를 살피는 마음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성의(誠意)와 바른 마음의 정심(正心),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신독(愼獨)으로 스스로를 바로 세운 사람만이 나만을 위한 나를 넘어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다.

고전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지혜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나를 넘어서는 것, 나를 바로 세워 너를 바라보고, 너를 이해하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 대학중용을 함께 읽으며 물질의 풍요를 넘어 정이 넘치는 인간다움의 길을 찾아가는 뜻깊은 여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가평에도 인문학 상설강좌가 개설될 날을 기다리며**

 

관리자 (gp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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