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상용(가평군 관광전문위원. 경영학박사)
가평군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이다.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을 중심으로 천하 패권의 각축전을 벌이던 때부터 현대 6.25 전쟁까지 국가 기반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 왔다. 구한말 나라와 임금을 구하고자 의병이 봉기한 충효의 고장이며,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고자 떨쳐 일어난 3.15 독립만세운동 발상지다. 특히, 6.25 전쟁 때는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켜낸 구국 헌신의 기반이었다. 이렇듯 가평군은 역사의 고비마다 국가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 기적의 땅이었다. 변변한 지도자 하나 없이 민초들이 합심하여 내 고장을 지켜냈다는 독특한 지역 정체성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가평군의 정체성은 6.25 전쟁 때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쟁 초기 북한은 기동군을 가평 지역으로 우회하여 수도 서울을 포위하고자 공격했다. 지역이 위험해지자 학생들은 학도의용군을 결성하고 청년들은 반공투쟁유격대를 창설하여 게릴라전을 펼쳤다, 중공군이 참전하자 국가 방어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 백척간두에 섰다. 1951년 4월과 5월, 중공군 춘계 대공세 때 영연방군과 미군이 두 번의 가평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퇴하고 국군이 재진격하도록 발판을 만들어 풍전등화의 나라를 되살렸다.
가평군 곳곳에는 6.25 전쟁이 남긴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수많은 청춘 장병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낯선 땅에서 피 흘리며 숭고한 희생을 했다. 가평군에는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영연방 참전기념비, 미군 참전기념비 등이 건립되어 매년 추모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북면 목동리에 미‧영연방 관광안보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차제에 우리는 이 안보관광지를 어떤 규모와 방향으로 완성하여 후세에 남겨 줄 것인지 역사적 인식과 철학적 사고에 기반한 기본틀을 정립할 단계에 와 있다.
먼저, 안보관광지 개발 방향을 학문적 연구 수준으로 접근해 본다. 최근 안보관광지 개발의 쟁점은 추모공간의 상업성과 진정성의 충돌 문제에서 나타난다. 전쟁 추모공간은 관광학문 용어로 ‘다크 투어리즘’이라 하며 전쟁터, 학살현장, 재난지역 등 역사적 비극과 연관된 장소를 방문하는 관광을 말한다.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안 대학의 존 레논과 말콤 폴리가 1996년 처음 학술적으로 정립한 이후 주요 관광학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의 집,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미국 뉴욕의 9·11 메모리얼, 한국 거제 포로수용소, 서대문 형무소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재 이 전쟁 추모공간들은 연간 수백만 명의 방문 관광객을 수용하며, 역사 교육과 추모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관광산업 및 학술 논의에서 전쟁 추모공원의 상업화와 진정성 문제가 줄곧 충돌하고 있다.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 상업화될 때, 진정성을 잃고 유희적 기능과 소비적 체험만 제공한다. 반면, 참혹한 전쟁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고 전사자들에 대한 추모의 진정성을 유지하면 깊이 있는 성찰과 힐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전쟁 추모공원 시설 자체는 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진정성 있게 기억하며, 방문객이 철학적 사유로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의 관광 트렌드 변화에 따라 ‘그리프 투어리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죽음에 대한 정신적 상실과 애도의 여행이 전통적 소비 관광과는 구별된다. 죽음과 상실을 마주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성찰하고 정신적으로 힐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평전투 현장에 조성되는 미‧연연방 안보관광지는 이처럼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과 상실·애도를 핵심으로 하는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의 가치를 모두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평가된다. 이 안보관광지에 포함되는 전쟁 추모공간은 기념비적 시설의 집합이 아니라 철학적 가치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연구의 핵심이다. 즉, 안보관광지 방문객에게 단순한 관람 경험을 넘어 전쟁 희생자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먼저 명확한 철학적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세계 여러 형태의 추모공간은 참고할 만한 사례를 제공한다. 영국 런던 하이게이트 공원는 19세기 중반에 조성된 이래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 양식과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 소설가 조지 엘리엇 등 역사적 인물들이 잠든 이곳은 세계적인 인문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이 공간의 가치는 화려한 기념비적 시설이 아니라, 방문객이 죽은 자의 삶과 사상을 조용히 마주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 구성에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은 약 2킬로미터의 산책로로, 18~19세기 철학자들이 즐겨 거닐던 곳이다. 특별한 조형물이나 전시가 없어도 사유를 위한 공간으로 기능한다. 걷는 행위 자체가 사색을 촉진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 추모공원들은 웅장한 자연 경관 속에 최소한의 인공 구조물만을 배치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삶과 죽음이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음을 표현한다. 방문객은 안내자의 별도 설명이 없이도 그 공간을 거닐면서 특정한 느낌을 경험한다.
다음은, 사업 추진 방향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공공주도형 지역개발 사업을 할 때 경제성 분석은 필수적인 절차라고 본다. 연간 방문객 수, 체류 시간, 소비 지출액, 지역경제 파급 효과 등 지표들은 예산을 편성하고 사업 타당성을 분석하는 데 쓰이는 기본 데이터이다. 그러나 공공주도형 안보관광지 조성 사업의 경우, 단지 수익성이 사업 성공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설 입장료 수입이 얼마나 될지, 투자 대비 회수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우선 기준으로 삼는 순간, 안보관광지 사업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따라서 관광학문적 연구 관점에서 볼 때, 가평군 안보관광지 조성 사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을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첫째, 가평군 정체성을 브랜드화하고 조종면의 밀리터리 테마파크와 연계해야 한다. 단순하게 북면 안보관광지만을 독립적으로 조성하여 고립화시킬 게 아니라, 가평군 전역에 산재한 평화‧안보 및 충효 문화자원을 융복합하여 글로벌 안보관광 순환벨트를 구축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북면 안보관광지는 생생한 전투현장을 중심으로 조성하고, 조종면 밀리터리 테마파크는 디지털 스마트화 체험 공간으로 조성하되 인근 주둔부대들과 협력하여 안보축제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면 좋겠다. 북면과 조종면을 잇는 순환도로를 통하여 두 테마파크를 국제적 규모의 안보 테마파크로 조성하고 전 세계에 홍보해야 한다. 다국적 참전용사들과 후손, 추모 관람객들이 관광순환버스를 이용하여 가평군 전역의 평화‧안보 관광코스를 탐방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둘째, 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전쟁 발발 배경, 가평전투 경과, 참전부대의 구성과 임무, 전투결과와 역사적 의의를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기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등 각국의 전쟁기념관과 외교적 협력이 필요하다. 역사 기록의 오류가 있는 정보는 추모의 진정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외교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자료 검증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셋째, 추모공간은 자연환경과 철학적 배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북면 산악지형과 전투 현장인 화악리 홍적천 등 자연환경은 안보공원과 관광콘텐츠를 결합하는데 중요한 자산이다. 인공구조물을 최소화하고, 자연 지형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추모공간은 철학적 분위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75년 전 가평전투가 벌어진 지형지물을 가능한 한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는 것도 역사적 진정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가평군 전역에 산재한 전적지와 기념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통합 안보관광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단지 미‧영연방 관광안보공원이라는 하나의 고립된 시설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을 브랜드화하고, 전쟁‧역사 문화교육과 추모의 기능을 갖춘 교육적, 철학적 문화관광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회교환이론을 실천해야 한다. 안보관광지 시설 자체의 수익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지역 역사문화 자원으로 기능하도록 조성하는 것이 좋다. 자연관광과 안보관광지를 결합한 여행코스를 개발하고, 숙박업소와 음식점이 방문객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연계 구조를 만들어야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안보관광지는 단기적 성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개관 첫해의 방문객 수, 초기 몇 년간의 운영 수지만으로 사업 성패를 판단하는 것은 이 사업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소수의 방문객만이 찾더라도, 추모공간의 진정성과 역사적 의미가 알려지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반면, 초기에 상업적 콘텐츠로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역사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가평군은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지방 소도시처럼 매우 작은 변방이다. 인구가 작고 도시 인프라 수준도 저조하며 북한강 상수원 지역에다가 농‧산촌 복합도시이다. 모든 면에서 인근 도시지역과 비교할 수 없이 낙후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땅이 품고 있는 6.25 전쟁의 역사와 민초들이 중심이 되는 지역 정체성과 생활문화는 수도권 변방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글로벌 국제 역사문화 콘텐츠와 연결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가평군 안보관광지 조성 사업에 있어서 전쟁 추모의 진정성과 사업 자체의 수익성은 둘 다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선순위를 골라야 한다면, 관광학문 연구 차원에서 전쟁 추모의 진정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 순서를 지키는 것이 이 귀중한 사업의 출발점이자, 글로벌 안보관광 테마파크가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는 명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