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조조의 책사 순욱(출처:네이버)
글. 이상용(수필가. 경영학박사)
혼란이 극에 달했던 중국 후한 말, 중원의 패권을 두고 ‘승상’ 조조와 ‘하북의 맹주’ 원소가 격돌한 ‘관도대전’은 단순하게 천하 쟁패의 권력투쟁을 넘어,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과 참모의 거시적 통찰력이 의기투합하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명징하게 보여준 역사적 대서사의 한 장면이다.
경쟁자 공손찬을 제압하고 북방의 최강자로 부상한 원소는 10만 정예병과 압도적 물자를 동원하여 천하를 도모하고자 중원으로 진격했다. 반면 기울어가는 후한 황제인 헌제를 옹립하여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한 조조의 군사력은 고작 2만 안팎에 불과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만 보면 원소의 승리가 예상됐지만, 군사력의 우위보다는 참모의 지략과 정보력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전쟁의 원칙을 보여주는 일대 반전이 숨어 있었다.
전쟁 개시 전, 조조 진영의 관료들은 원소의 압도적인 위세에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자 참모 순욱은 조조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 4가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즉, 조조가 원소에 비해 도량, 모략, 무력, 덕망 등 4가지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내용이었다. 원소는 도량이 좁아 결단력이 없고, 군기가 서지 않으며, 명분과 신의가 없으므로 필패할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반면 조조는 후한의 승상이라는 정통성이 있고, 인의를 숭상하며, 법도가 있으되 열려 있는 인재 등용 등 네 가지 측면에서 원소보다 뛰어난 지도자이므로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확신이었다.
순욱은 명문가 출신 최고 지략가로 원래 원소의 빈객이었다. 그러나 원소는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만, 도량이 작은 것을 알고 조조를 찾아왔다. 이미 순욱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조조는 “나의 장자방이 이제야 왔구려.” 하면서 뛰어나가 맞이했다. 순욱은 조조를 만나자마자 한나라 황제를 옹립하여 국가적 정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계책을 선물했다. 조조는 앞뒤 잴 것 없이 순욱의 계책을 수용하고 그대로 이행했다. 이 계책은 그대로 적중하여 조조를 일약 후한의 승상으로 올려놓고 권력 집중의 명분을 확보했다.
관도대전이 시작되자 조조는 순욱이 올리는 계책에 따라 전장의 위기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결단력을 몸소 보여줬다. 전쟁 초기 원소 군이 거세게 중원으로 공격해 오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지형적 이점과 심리전을 극대화하는 지연 전략을 펼쳤다. 전쟁의 서막인 백마 전투에서는 서슴없이 ‘성동격서’의 계책을 발휘했다. 황하를 건너 후방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원소 군의 주력을 분산시킨 뒤, 정예병을 몰아 고립되어 있는 장수 안량의 부대를 기습으로 격파했다.
이후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군량이 바닥나는 한계 상황을 맞이하면서 군사들은 굶주렸고 적과 내통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한때 조조 자신도 심리적인 한계에 부딪혀 중원으로 퇴각할 것을 고민했다. 그때 본거지 허창을 지키던 참모 순욱이 결전의 전략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먼저 물러나는 자가 필패합니다. 지금이 바로 승리를 결정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반드시 원소 진영에서 내분이 일어날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참모 순욱의 기막힌 통찰력을 담은 편지는 조조 군을 일대 위기의 순간에서 구했다. 때마침 원소의 모사 허유가 조조 진영으로 투항하여 군량 기지인 ‘오소’의 군사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허유는 본래 뛰어난 지략가였으나, 원소 진영 내 극심한 파벌 싸움에 실망하던 차에 조조 군이 위기에 처하자 귀중한 군사정보를 가지고 투항했다. 조조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맨발로 뛰어나와 허유를 맞이했다. 허유는 오소에 있는 군량창고의 위치와 허술한 경비 상태를 조조에게 설명했다. 조조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신속하게 허유를 참모로 기용했다. 적장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출신과 배경을 따지지 않고 전격 기용하는 조조의 인재 등용 철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장수들이 함정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담아 상소를 올렸지만, 그는 필생의 결단을 감행했다. 직접 정예 기병을 이끌고 원소 군 심장부인 오소를 야간 기습으로 공격하여 모조리 불태웠다.
한편, 원소는 허유가 조조에게 투항하여 오소 군량 창고의 정보를 제공했고, 이어 조조 군이 오소를 기습할 것이라는 명확한 정보 보고를 받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게다가 참모들의 의견이 사사건건 대립하여 장수들이 갈팡질팡하고 말았다. 결국 오소의 군량 창고를 잃은 원소의 대군은 사기가 꺾이고 배고픔에 시달리며 패배를 자초했다.
결국 순욱의 통찰력 있는 전략을 받아들여 먼저 실행에 옮긴 조조의 과감한 결단이 겉으로만 화려하고 결단력은 전혀 없는 원소의 10만 대군을 제압하고, 대륙의 패권을 단번에 뒤바꾼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순욱은 관도대전을 치르는 전 과정에 걸쳐 조조가 결단력을 잃지 않도록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냈다. 후방인 허창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조조를 심리적으로 안정되게 보좌했다. 시시때때로 승부처를 간파하고 공세와 방어 시점을 조율하여 지도자에게 결단의 타이밍을 제공했다. 이렇듯 참모 순욱의 거시적 통찰력이 없었다면 조조 군은 관도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스스로 지치고 무너졌을 것이다.
1,800년 전 삼국시대 관도대전, 그 역사적 반전의 서사는 오늘날 지도자와 참모들에게 명확한 리더십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다. 아군 진영에 아무리 세력이 없고 판세가 불리하더라도 참모는 지도자가 안심하고 전장을 누빌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적과 아군의 명확한 상황을 분석하여 지도자의 장점을 상대의 단점과 비교함으로써 필승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지도자와 의기투합하여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단 전쟁이 개시된 후에는,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지도자와 참모가 고도의 결단과 통찰로 합심하여 위기 속에서도 평정심으로 무장할 때 비로소 승리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