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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칼럼] 권력의 속성 — 장자방과 한신의 처세 비교론

기사입력 2026-07-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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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방 초상화(출처:구글)

 

이상용(칼럼니스트. 경영학박사)

1. 역사의 변곡점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참모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자, 시대를 호령한 지도자의 무대로 기억된다. 진시황의 서슬 퍼런 제국이 불과 15년 만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천하가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을 때도 대중의 시선은 언제나 역사적 무대의 전면에 나선 지도자들에게 향했다.

자신을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하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세상을 포효했던 항우, 그리고 동네 건달 출신의 미천한 신분에서 시작해 유연한 인간미와 포용력으로 천하를 얻은 한왕(漢王)’ 유방. 7년간에 걸쳐 펼친 초한쟁패(楚漢爭覇)의 장대한 드라마에서 최고의 주연은 단연 이 두 지도자였다. 전한 시대, 역사학자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통해 이 치열한 천하 패권 경쟁을 생생하게 서술했고, 명나라 시대 견위는 이를 바탕으로 소설 초한지(楚漢志)를 엮어 천하 영웅호걸들의 위대한 서사를 후세에 전했다.

그러나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바뀌는 결정적 변곡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무대 위의 주연을 빛나게 만들고 때로는 스스로 주연이 되어 역사를 바꾼 참모들이 존재했다.

난세에는 탁월한 전략과 냉철한 통찰로 지도자를 보좌하여 천하 패권을 승리로 이끄는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참모들을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오늘날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위기와 선택의 순간마다 나의 장자방은 어디 있는가?”라며, 역사 속 최고의 참모에게 추앙을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직의 명운을 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최고의 브레인이 지닌 가치는 시대를 불문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기실, 참모의 역할은 단순히 눈앞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단편적인 전술을 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참모는 지도자의 도덕적 명분을 세우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며, 군중의 심리를 꿰뚫고, 때로는 가혹한 권모술수까지 아우르는 거시적인 통치 철학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처럼 위대한 공적을 세우고 패권 경쟁을 승리로 이끈 참모들의 운명은, 정작 모든 경쟁이 끝난 이후, 나라를 세울 때 극명하게 갈라진다.

천하를 얻는 과정보다, 천하를 얻고 난 이후 권력자의 곁에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참모로서의 최종적인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 냉혹한 역사의 갈림길 위에 두 가지 상반된 처세의 길이 놓여 있는데, 바로 공성신퇴(攻成身退)’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2. 공성신퇴 공을 세우고 나서 뒤로 물러나는 처세

지혜와 충성심을 겸비한 참모는 권력의 속성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는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등장하는 공성신퇴(攻成身退)’,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뒤로 물러난다는 물러남의 미학을 몸소 실천할 줄 안다. 천하 패권을 차지한 지도자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여, 자신의 최고 참모에게 권력과 재물의 보상을 제안할 때, 지혜로운 참모는 과감하게 사양하고 철저하게 권력 중심부와 거리를 둔다. 참모의 자발적 물러남은 단순한 겸손이나 계산적 행동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속성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모든 권력은 본질적으로 독단성을 가진다. 아무리 생사를 함께한 동지라 할지라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도자는 결국 참모의 공적과 영향력을 잠재적 위협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러날 때를 아는 참모는 지도자의 마음에 의심의 싹이 트기 전에 스스로 무대를 내려옴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질 권력의 칼날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혜로운 참모의 겸손한 퇴장은 지도자에게 깊은 심리적 부채 의식을 남긴다.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준 참모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야인으로 돌아가 은둔을 택할 때, 지도자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참모에게 있어서 물리적으로는 권력에서 멀어지되 정신적으로는 영원히 명예로운 대우를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권력을 쥐는 기술보다 놓는 기술이 더 위대함을 증명하는 처세론이다.

3. 토사구팽(兎死狗烹) 오만함이 부르는 비극적 처세

반면,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대 위의 화려한 주인공 자리를 끝까지 탐하는 참모는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자신이 세운 공적과 승리의 지분을 앞세우며 권력의 중심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의 전략이 없었다면 주군이 어떻게 천하 쟁패에 성공했겠는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라고 스스로 과대포장 하는 악수를 두고 만다.

이러한 참모의 오만한 처세는 결국 지도자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지름길이다. 천하 패권을 차지한 후, 참모가 드러내놓고 공적과 세를 과시한다면, 지도자는 새로운 권력 기반을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참모는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고 만다. 필요할 때는 쓸개라도 내어줄 것처럼 요긴하게 쓰다가, 목적을 달성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하게 내버리는 권력의 속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되풀이되는 법이다. 권력층으로부터 버림받는 참모의 공통점은 권력의 속성이 지닌 비정함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점이다. 그런 참모는 지도자와 비공식적, 사적으로 맺은 관계나 약속이 공적인 역학 관계보다 더 단단할 것이라 신봉하는 치명적인 착각을 범한다.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의 아슬아슬한 손등 위에서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하다가 미끌어져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이다.

4. 장자방과 한신 역사가 입증한 참모 처세 비교론

공성신퇴인가, 토사구팽인가. 이 상반된 처세론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역사적 실증 사례가 바로 초한지에 등장하는 장자방과 한신이다. 이들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 창업의 기틀을 다진 한초삼걸(韓初三傑)’로 꼽히는 인물들이었으나, 천하 패권 쟁취 이후 그들의 행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첫째, 장자방은 공성신퇴’, 즉 물러나는 지혜의 미학을 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구현한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뛰어난 전략가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었다. 서초패왕 항우를 파멸로 몰고 간 해하전투의 사면초가(四面楚歌) 전략을 비롯해 유방을 위기에서 구한 홍문연 사건, 팽성대전 후 군사력을 결집하는 계책 등의 성과를 보면 가히 천하제일 참모였다. 하지만, 한나라 건국 후 큰 권력과 영지를 하사하려 하자, 단호하게 사양했다. 대신 처음 만나 의기투합했던 상징적인 장소, ‘유현지방을 맡아보면서 권력의 중심에서는 완전히 은퇴했다. 건강을 핑계로 곡기를 끊고, 신선술을 닦겠다며 권력의 중심지인 장안을 떠나 홀연히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유방의 거친 성정과 향후 벌어질 숙청의 피바람을 예측한 지혜로운 처세였다. 그로 인하여 그는 유방의 경계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오히려, 조정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유방과 그의 부인 여태후가 먼저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등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 남을 수 있었다.

둘째, 한신은 유방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서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하려고 애쓰다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비극을 맞이했다. 초한전쟁 당시 백전백승의 신화를 쓰며 승리로 이끈 군사적 천재였으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보여준 그의 미숙한 처세술은 스스로 파멸로 몰고 갔다.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던 초한전쟁의 승부처는 제나라 지역의 공방전이었다. 이 절박한 시기에 그는 목숨마저 위태로운 위기에 봉착해 있던 유방에게 자신을 제나라의 임시 왕으로 임명해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했다. 당장 군사력을 보강해 항우에게 대적해야 하는 유방은 분노를 누르고 어쩔 수 없이 수락했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유방의 마음에 깊은 불신과 원망의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되었다. 유방은 천하 패권을 얻은 후,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하려는 한신을 반역자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막강한 군사력과 명성을 지닌 한신을 충신이 아니라, 언제든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반역자로 의심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신은 자신이 최고 공신이자, 가장 강력한 세력을 보유한 제후라는 자부심에 취해 권력층의 의심을 해소하지 못했다. 결국 제후국 왕에서 후작으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그의 영지 확장 욕심에 위협을 느낀 여태후에게 사로잡혀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는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더니, 천하가 평정되니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탄식을 남긴 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참모의 표상이 되었다.

언필칭, 한신은 지도자를 보좌하는 참모로서 미숙한 처세를 하고 말았다. 천하 패권의 최고 승부처에서 지도자의 위기 상황을 이용해 사사로운 권력을 요구한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압력적인 결정을 얻어냈을지언정, 참모 처세론적 관점에서 보면 지도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모멸감과 불신을 심어준 치명적인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5. 역사 속 참모 처세 비교론 시사점

초한쟁패, 그 거대한 역사의 무대가 막을 내린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공성신퇴와 토사구팽이 주는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의 정치판, 거대한 기업, 그리고 수많은 조직의 내부에서도 과거 난세와 다름없는 치열한 패권 경쟁이 매일 벌어진다. 지도자를 보좌하여 놀라운 성과를 내고 조직을 위기에서 구하는 현대판 참모들, ‘장자방한신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또 사라져 간다. 오늘날 참모들 역시 성과를 낸 후에는 누구나 처세의 기로에 서게 된다. 자신이 세운 공적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권력의 중심에서 지도자에게 지분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승리의 공을 온전히 지도자에게 돌리고 스스로 물러설 때를 찾아 아름다운 처세를 할 것인가.

역사는 명백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참모라 할지라도 스스로 무대의 주인공을 탐하거나 지도자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려 드는 순간, 조직에서의 생명은 끝을 향해 달리기 마련이다. 참모의 명성은 승리를 만들어 내는 지략뿐만 아니라 천하 패권의 정점에서, 물러날 줄 아는, 절제의 미학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초한지의 주인공 장자방이 수천 년 동안 불세출의 참모이자 처세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이유가 있다. 단지, 지도자를 천하 패권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유능한 참모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막상, 천하를 얻은 후 부귀영화를 사양하고 권력층의 그늘에서 벗어나, ‘공성신퇴 - 공을 세웠으면 몸은 물러난다는 지혜로운 처세론을 몸소 실행한 까닭이다.

역사 속 천하 패권 무대에서 활약한 참모들의 처세를 들여다보니, 단지 공을 세우는 것보다 물러날 때를 잘 아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장자방의 공성신퇴와 한신의 토사구팽 처세론의 결말이, 오늘날 천하를 얻고자 일어선 지도자와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에게 날카로운 교훈을 던지고 있음을 깨닫고는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관리자 (gp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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