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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산초당기》를 읽으며 잠시 사유의 시간, ‘ㅚ로움’을 갖는다

기사입력 2026-05-1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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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룡(인문고전연구소 경인학당 대표)

오늘은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더위에 지친 몸을 눕혀 달콤한 낮잠을 청한 뒤, 고요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고문진보9강을 준비한다. 문득 백거이의 여산초당기(廬山草堂記)를 읽어 내려가다 가슴 깊이 고여 드는 생각이 있어 펜을 든다.

백거이가 여산 향로봉 아래에 초당을 짓고 세속의 번뇌를 씻어냈듯, 퇴직 후 삶의 궤도에서 한 걸음 물러난 내게도 온전한 안식과 영혼의 평화를 허락한 나만의 초당이 있다. 기쁨을 주는 잣나무골의 둥지라는 뜻을 담은 곳, 바로 희백둥지(喜栢巢)’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백거이가 품었던 겸제천하(兼濟天下)’와 같은 거대한 포부는 없었다. 그저 세상이 정해 놓은 출세와 성공의 트랙에서 낙오하지 않으려 버둥거리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 길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늘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마침내 그 궤도를 벗어나 야인(野人)의 삶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백거이처럼 명당을 찾아 초당을 짓는 대신 우리 민족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으로 향했다. 거대한 산줄기 속에서 삶의 본래 숨결과 우리 땅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18개월 동안 매달 두 차례씩 구간을 나누어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험준한 능선을 타고 몰아치는 비바람을 맞을 때마다,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속세의 욕망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낙엽처럼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백거이가 푸른 산을 우러르고 맑은 샘물을 굽어보며 위안을 얻었듯, 나 역시 묵묵히 이어지는 산줄기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대간 종주 이후에는 뜻밖에도 마라톤이 나를 사로잡았다. 42.195 km라는 거리를 달리는 일은 얼핏 육체적 고행처럼 보이지만, 내게 그것은 무아(無我)에 이르는 가장 깊은 형태의 은거였다. 마라토너의 꿈이라 불리는 Boston Marathon을 완주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Wellesley College 학생들의 뜨거운 환호와 심장파열의 언덕(Heartbreak Hill)’을 넘어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의 벅찬 감정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한다.

심장이 터질 듯한 고비를 넘겨 발걸음이 아스팔트와 하나가 되는 순간,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번뇌와 공허는 오늘 흘린 땀방울처럼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오직 호흡과 걸음에만 집중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백거이가 말한 외적내화(外適內和), 체녕심첨(體寧心恬)”의 경지를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다. 밖으로는 몸과 환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안으로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정을 찾는 상태. 그것은 홀로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바르게 간직하는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삶과 닿아 있었다. 고독하지만 결코 황량하지 않은, 오히려 스스로를 온전히 회복시키는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직장을 떠난 지 수년이 흐른 지금, 나의 일상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화려한 단청도, 새하얀 회칠도 없는 고요한 방 안에서 나를 채우는 것은 동양고전의 향기이다. 유학의 가르침 속에서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바른 길을 배우고,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며 가르치는 보람과 배우는 기쁨을 함께 누린다. 때로는 장자의 사유에 깊이 몰입하며 그의 사상 속 모순과 역설까지도 마음 깊이 새긴다. 그러한 순간마다 인간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성찰하는 존재임을 새삼 느낀다.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성현들의 문장이, 성공의 트랙에서 내려온 지금에야 비로소 가슴 깊이 스며든다. 낮에는 책을 읽고, 새벽에는 주로(走路)를 달리며, 때로는 지나온 산줄기를 떠올리는 일상 속에서 유학과 장자의 텍스트는 거문고 소리처럼 영혼의 공허를 채워준다.

그러나 나의 은거는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리는 도피가 아니라, ‘외로움괴로움사이 그 어디쯤을 더듬으며 참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가깝다. 나는 이를 외로움과 괴로움의 줄다리기, 곧 ㅚ로움이라 부르고 싶다.

홀로 지내는 외로움이 깊어져 삶의 괴로움이 될 때면 문득 도시로 나가 사람들과 부딪치지만, 이내 그 번잡한 괴로움 속에서 다시 고요한 외로움을 갈망하며 그곳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게 된다.

인간이란 결국 그 둘을 가르는 미세한 경계선 위에서 오롯이 스스로를 대면하는 존재가 아닐까. 외로움과 괴로움(ㅚ로움)’의 팽팽한 긴장 사이에서 인간은 비로소 내면이 단단해진다.

백거이 역시 여산에 뼈를 묻겠다고 말하면서도 문학을 통해 끝내 세상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듯, 나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공동체와 호흡하고자 이어도지키기국민운동에 참여해 어느덧 6년째 그 뜻을 이어오고 있다.

이어도를 지키는 일은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대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자, 조용하지만 진심 어린 헌신이다. 내게 그것은 유학이 말하는 ()’의 실천이며, 평생의 뜻을 가장 담백하게 이루어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천 년 전의 여산초당기는 세월을 뛰어넘어 어느새 나 자신의 자서전처럼 다가온다. 직장이라는 익숙한 둥지를 떠나 백두대간을 걷고, 마라톤의 긴 주로를 달렸으며, 고전을 읽고 가르치는 삶 속에서 내면을 단단히 다져왔다. 그리고 이어도를 지키는 작은 실천으로 그 삶의 궤적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가고 있다.

희백둥지는 비록 눈에 보이는 화려한 집은 아닐지라도, 푸른 잣나무의 기상과 잔잔한 기쁨이 머무는 마음의 초당이다. 그 안에는 이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여산(廬山)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 흘린 땀방울을 식히고 일어난 사유의 공간에서, 나는 고요하고도 풍요로운 은거의 삶을 통해 내 평생의 뜻을 천천히 완성해가고 있다.

 

관리자 (gp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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